2화
‹ ›감정의 방은 생각보다 좁았다.
천장이 유난히 낮아서, 마치 학교 상담실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대리석 바닥에는 원형으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 위에 서면 마력의 속성이 드러난다고 했다.
'무슨 MBTI 검사도 아니고.'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손끝은 자꾸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방 안에는 귀족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다들 옷차림이 화려했다.
나만 유독 수수한 것 같아서,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신관은 하얀 로브를 입은 중년 남자였는데, 목소리가 지나치게 낭랑해서 마치 홈쇼핑 진행자 같았다.
"자, 다음! 이서아 영애!"
이서아가 자신만만하게 걸어 나갔다.
턱을 살짝 들고, 걸음걸이마저 우아하게.
'저건 완전 무대에 익숙한 애 걸음인데.'
원 위에 서자 발밑에서 빛이 일었다.
[속성: 불]
이라는 문구가 허공에 떠올랐다.
"오오, 불속성입니다!"
신관이 손을 들며 외쳤다.
한지영이 손뼉을 치며 활짝 웃었다.
"과연 내 딸이구나!"
'네 딸이니까 그렇겠지.'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불속성이 뭐 유전되는 것도 아닐 텐데, 저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네.'
이서아는 주변 아이들을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 보였다.
마치 시상식 무대에서 트로피를 받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다음은 다른 귀족 아이들의 순서였다.
[속성: 물]
[속성: 바람]
[속성: 빛]
하나씩 결과가 나올 때마다 부모들은 함성을 질렀다.
마치 시험 성적표를 받아 든 학부모들 같았다.
'중간고사 전교 1등 발표하는 줄.'
전생의 나였다면 저기서 박수 대신 하품을 했을 것이다.
한 아이는 [빛] 속성이 나오자 어머니가 아예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저게 울 일인가.'
물론 이 세계에서는 우는 게 맞는 일일 것이다.
속성이 곧 가문의 미래고, 미래가 곧 생존이니까.
그걸 알면서도 나는 자꾸 이 상황이 우습게 느껴졌다.
전생의 습관이란 게 이렇게 무섭다.
"서은유 영애."
내 이름이 불렸다.
순간 방 안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리는 게 느껴졌다.
'아니, 뭘 그렇게 쳐다봐.'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겉으로는 최대한 태연한 얼굴을 유지했다.
나는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새겨진 문양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조금씩 빨라졌다.
원 위에 섰다.
발밑의 문양이 은은하게 빛나는 게 보였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뭐가 나오든 그냥 무난하게 지나가자.'
물이든 바람이든, 심지어 흙속성이라도 좋았다.
그게 유일한 바람이었다.
빛이 발밑에서 일었다.
그런데... 색이 이상했다.
노랗지도, 파랗지도, 붉지도 않았다.
그냥 하얗고, 회색이 섞인, 뭐라 표현하기 힘든 빛깔이었다.
'저건 무슨 속성이지? 무채색 속성인가?'
허공에 뭔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글자였다.
한글이었다.
[불명(不明) — 문자 계열]
장내가 순간 조용해졌다.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까지 시끄럽던 함성이 뚝 끊긴 게, 오히려 더 크게 느껴졌다.
"저게... 뭐지?"
누군가 중얼거렸다.
신관이 눈을 크게 뜬 채 두루마리를 뒤적였다.
손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두루마리를 앞뒤로 넘기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그 모습이 꼭 시험 문제 답을 못 찾아서 허둥대는 학생 같았다.
"이런 속성은... 기록에 없습니다."
"기록에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서지호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평소의 침착한 말투와는 다르게, 목소리 끝이 살짝 갈라져 있었다.
'저 아저씨도 놀라긴 하네.'
나는 발밑에서 떠오른 글자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허공에서 흔들렸다.
'글자라니. 이게 무슨 마법 속성이야.'
그 순간 나는 정말 진심으로, 게임 시스템 오류를 마주한 사람의 기분을 느꼈다.
'서버 점검 안내도 없이 이딴 버그를 던져?'
"결함입니다."
신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목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작아져 있었다.
"오대 속성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미분류입니다. 이런 경우는... 실패로 처리됩니다."
실패라니.
마력 속성에도 낙제라는 게 있었나.
전생에도 시험은 지긋지긋했는데, 이번 생에서도 성적표를 받는구나.
서지호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실망도, 분노도 아닌, 뭔가 더 차가운 것이 담겨 있었다.
계산.
그래, 저건 계산하는 눈이었다.
'저 사람 머릿속에서 지금 주판알 튀는 소리 들리는 것 같은데.'
"결함이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군."
그가 말했다.
말투는 침착했지만,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가 있었다.
'저 사람, 지금 반가운 거잖아.'
전생의 기억이 있어서인지, 나는 어른들의 표정을 읽는 데 조금 익숙했다.
서지호는 지금 나를 버릴 명분이 생긴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그 명분, 이렇게 쉽게 잡을 줄은 몰랐지만.'
한지영도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는 척했다.
손등으로 입가를 가리는 그 몸짓이, 어쩐지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더 얄미웠다.
이서아는 신이 나서 손가락질했다.
"저 언니 결함이래! 결함!"
목소리가 방 안 전체에 쨍쨍 울렸다.
다른 아이들 몇몇이 킥킥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아, 이 나이대 애들은 원래 이렇게 잔인한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원에서 내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발끝부터 무릎까지, 힘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울 힘도 없나 보네, 나.'
오히려 머릿속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서지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창밖만 응시하는 그 옆얼굴이, 마치 벌써 다음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람 같았다.
한지영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유야, 상심하지 말렴. 사람 일이 다 그런 거지, 뭐."
위로하는 말투였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입은 걱정하는 모양으로 움직였는데, 눈꼬리는 반대로 올라가 있었다.
'이 여자, 연기력 하나는 참 아깝다.'
'저쪽 세계 있었으면 연기대상 받았을 텐데.'
이서아는 마차 구석에 앉아서 계속 나를 힐끔거리며 웃었다.
내가 눈을 마주치자, 얼른 시선을 피하고는 창밖을 보는 척했다.
'저건 또 저거 나름대로 눈치는 있네.'
방에 돌아와 문을 닫자마자, 나는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손금 몇 개, 그게 다였다.
하지만 낮에 봤던 그 글자들이 눈앞에 선명했다.
눈을 감아도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더 뚜렷하게 떠올랐다.
'결함이라고 했지.'
근데... 정말 그럴까.
전생에 봤던 수많은 게임과 소설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이런 식으로 남들과 다른 속성이 나오면, 대개 결말은 두 가지였다.
진짜로 쓸모없는 잉여이거나, 아니면 세상에 다시없을 사기캐이거나.
'제발 후자였으면 좋겠는데.'
나는 손끝에 힘을 주며 허공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써보았다.
"불."
순간, 손끝에서 작은 빛이 일었다.
손톱만 한 불꽃이 허공에 떠올랐다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글자 마력 — 시험 발현 성공]
나는 숨을 멈췄다.
방금 뭐가 일어난 거지.
손끝이 얼얼했다.
마치 정전기가 오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손가락으로 다시 써보았다.
"물."
작은 물방울이 손끝에서 맺혔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톡, 하는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이거... 진짜네.'
결함이 아니었다.
적어도, 완전히 쓸모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다급하게 다음 글자를 떠올렸다.
"바람."
이번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두 글자는 안 되나?'
다시 시도했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그제야 문제가 뭔지 알아차렸다.
한 글자, 한 글자 쓸 때마다 머리가 핑 돌 정도로 힘이 빠졌다.
두 개 연달아 쓰고 나니 벌써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이거 완전 배터리 5퍼센트짜리 능력이잖아.'
'그것도 방전 속도가 미친 듯이 빠른 배터리.'
하지만... 5퍼센트라도 켜지는 게 어딘가.
나는 이불에 등을 대고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의 나뭇결 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살아남으려면 이걸 써야 해.'
결함이라 낙인찍혔지만, 이건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제어만 할 수 있다면.
전생에서 그렇게 많은 것들을 봤으면서도, 정작 내 몸에 붙은 능력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게 우스웠다.
'이러니 진짜 옛날 애니 주인공 된 느낌이잖아. 각성은 했는데 아직 제어를 못 하는 그 클리셰.'
문제는, 서지호의 눈빛이 아까부터 계속 마음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뭔가를 결정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차 안에서 창밖만 바라보던 그 무표정한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되풀이됐다.
'저 사람이 뭘 결정했는지, 나만 모르는 것 같은데.'
불안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그 예감은, 언제나 그렇듯 틀리는 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