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서지안이라고 했던가, 곧 대화 중에 스스로 이름을 밝혔으니 짐작이 아니라 확인이 됐다. 나보다 두 살 위인 오빠, 서지안. 그는 팔짱을 낀 채 문가에 서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이 어찌나 매서운지 이 몸이 십육 년간 받아온 신뢰가 이미 마이너스 통장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키는 훌쩍 크고 어깨는 곧았으며, 눈매는 나를 쏘아보는데도 이상하게 단정한 인상이었다. 저런 얼굴로 저렇게 사람을 쏘아보면 반칙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빠, 제가 어제 무슨 일을 벌였다는 거예요?" 최대한 순진한 얼굴로 물었지만, 속으로는 정신없이 정보를 긁어모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캐물어야 살 수 있다는 걸, 삼십칠 년 교직 생활이 알려준 감이었다. 학생이 사고를 쳤을 때 제일 먼저 할 일은 사건의 전체 그림을 확보하는 것이다. 변명이든 반성이든, 사실관계를 모르고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서지안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기억이 안 난다는 연기까지 하는 거냐? 대단하다." 그가 팔짱을 풀며 성큼 다가왔다. 걸음마다 화가 실린 게 느껴졌다. "이수정한테 손찌검을 했잖아. 세 번째다, 이번 달만." 그 이름이 이수정, 아마 아까 그 하녀였을 것이다.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걸 느꼈다. 이게 무섭다는 감정인가 보다, 라고 스스로 진단하면서도 표정을 관리하려 애썼다.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게 느껴져서, 나는 그 손을 이불 속으로 슬쩍 숨겼다. 이런 걸 들키면 또 뭐라고 해석될지 모를 일이었다.
세 번째라는 말이 자꾸 귓가에 남았다. 한 달에 세 번이면 거의 열흘에 한 번꼴 아닌가. 이 정도면 습관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나는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이 서은하라는 애의 인성 점수가 바닥을 뚫고 지하실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회상해야겠다. 나는 원래, 그러니까 이 몸에 들어오기 전의 나는, 서울 변두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삼십칠 년을 칠판 앞에서 살았고, 매년 새 학기마다 새로운 얼굴들을 외우며 늙어갔다. 정년퇴직식 날 계단에서 넘어졌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으며,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 낯선 방, 낯선 몸, 낯선 세계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죽음 이후에 뭔가가 있을 거라고는 늘 생각해왔으니까. 다만 그게 하필 남의 인생을, 그것도 이렇게 평판이 시궁창인 여자애의 인생을 통째로 물려받는 방식이라는 건 개연성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하다못해 착한 애 몸에 들어갔으면 편했을 텐데, 하는 원망도 잠깐 들었지만 곧 접었다. 원망할 상대도 없는 상황에서 원망은 시간 낭비였다.
하지만 지금은 개연성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서지안의 말대로라면, 이 서은하라는 애는 상습적으로 하녀를 학대해왔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이번 달만 세 번이니, 이건 어제오늘 시작된 일이 아니라 뿌리가 깊은 습관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물었다. "제가 왜 그랬는지, 오빠는 아세요?" 서지안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걸 나한테 묻는다고? 네가 제일 잘 알겠지."
대답이 궁했다. 모른다고 하면 더 의심을 살 게 뻔했고, 아는 척하면 뭐라 말을 이어가야 할지 막막했다. 이럴 때는 어설프게 아는 척하는 것보다 방향을 트는 게 낫다는 걸, 나는 수십 년간 학생들 상담하며 배웠다. 결국 나는 방향을 틀었다. "어제 일은... 죄송해요. 제가 요즘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 정도면 무난한 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서지안의 표정이 오히려 더 굳었다.
"뭐라고?"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나는 반사적으로 등을 침대 헤드에 붙였다. "네가 죄송하다는 말을 해? 서은하 입에서?" 목소리에 놀라움과 경계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싶었지만, 곧 깨달았다. 이 서은하라는 애가 지금까지 살아온 십육 년 동안 단 한 번도 사과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애가 갑자기 죄송하다는 말을 하니 저게 독을 의심할 만한 반응이라는 거지. 사과 한마디가 이렇게 무거운 파장을 일으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평범한 애였으면 그냥 넘어갔을 말인데.
서지안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나를 다시 훑어봤다. 눈동자가 위아래로 나를 훑는 게, 마치 낯선 손님을 보는 눈빛이었다. "너 뭔가 이상해. 어제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오늘은 갑자기 사람이 바뀐 것처럼..." 그가 말을 멈추고 눈을 좁혔다. "설마 아버지가 부른 신관이 뭔가 했나?" 신관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세계에 신관이라는 게 존재하고, 그게 몸에 영혼을 넣거나 빼는 일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상태가 발각될 위험도 있다는 거잖아. 심장이 다시 한번 쿵, 내려앉았다. 이러다 심장이 아예 바닥까지 뚫고 내려가겠다.
"신관이요? 그런 게 왜요." 나는 최대한 무심한 척 반문했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는 게 느껴졌다. 티가 났을까, 안 났을까, 그것만 계속 생각했다. 서지안은 잠시 나를 살피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됐다. 어제 이수정 상처는 치료받았으니 됐고, 오늘부터 또 그런 짓 하면 내가 아버지께 직접 말씀드릴 거다." 그가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나는 다급히 물었다. "오빠, 저 어제 이수정한테 왜 그랬는지... 다시 한번 말해주실 수 있어요?"
서지안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그 눈빛에는 짜증과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 "차를 늦게 가져왔다고 그랬지. 매번 그런 식이잖아." 그가 다시 걸어가려는데, 나는 한 번 더 붙잡았다. "그리고... 학교에서는요? 제가 학교에서도 문제가 있었나요?"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물은 거였다. 이 서은하라는 애가 다니는 학교라는 게 있다면, 거기서도 뭔가 벌여놓은 게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삼십칠 년 교사 생활이 알려준 또 다른 감이었다. 문제아는 한 곳에서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서지안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너 진짜 이상하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나를 오래 바라봤다. 그 시선이 얼마나 길었는지, 나는 숨을 참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학교 얘기를 왜 갑자기 궁금해하는 거지? 곧 아카데미 개학이니까 걱정되는 거냐, 갑자기?" 아카데미라는 단어가 새로 등장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너무 캐물으면 의심만 더 살 것 같아서 말을 삼켰다. 궁금한 걸 참는 것도 일종의 생존 기술이라면, 나는 지금 그 기술을 최대치로 발휘하고 있었다.
"그냥... 요즘 이런저런 걱정이 많아서요." 나는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서지안은 한동안 나를 쏘아보다가 결국 한숨을 쉬며 문을 열었다. "됐다. 오늘은 아버지가 서재로 부르실 거니까 준비하고 있어라." 그가 나가고 방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나는 그대로 침대 끝에 걸터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내뱉으니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아카데미, 학교에서의 문제, 하녀 학대, 신관,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가 부른다는 서재까지. 이 몸 하나에 얽힌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게 실감 났다. 마치 첫 출근 날 담임을 맡았는데 반 전체가 문제아인 걸 알게 된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중 가장 무서운 건, 이 모든 문제를 만든 사람이 나는 아니지만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부터 나라는 거였다. 억울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상황이었다.
서랍장 위 쪽지 뭉치를 다시 집어 들었다. 이름들과 붉은 줄. 이게 뭘 의미하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종이는 오래 만진 흔적이 있었고, 잉크는 눌러 쓴 자국이 깊었다. 누가, 왜, 이런 목록을 만들어놨을까. 나는 손끝으로 이름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쪽지 맨 아래, 낯익은 이름 하나가 눈에 걸렸다. 이준혁. 밑줄이 세 번이나 그어져 있었다.